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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허무와 후회가 없는 인생을 누구나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허무와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 내용을 통해 허무와 후회가 없는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장 1-8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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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한 내용에 대하여 쓰고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가운데 들어간 것이”
여기서 사용된 단어 '우리'는 바울과 실라를 말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들어온 것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고 선교활동을 했던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헛되지 않았다는 말이 참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헛되지 않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허무한 때는 헛된 삶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일은 다 마쳤는데 그동안 해 온 노력이 헛된 일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실망이 찾아오는지 모릅니다.
전도서 1장 2절-4절 말씀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하지도 않은 일을 하며 평생 살다가 결국 헛된 인생을 살았구나 느껴질 때 가장 허무합니다. 그렇다면 허무한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4절에서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한 번 살아버린 인생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번뿐인 인생 허무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4절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을까요?
1. 고난과 능욕을 당함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허무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했는데 고난이나 받고 능욕이나 받는다면 그것이 허무한 인생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 때문에 고난과 능욕을 받았는지에 따라 허무한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상급 받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만일 자기 자신 때문에 고난과 능욕을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 허무한 인생이었을 겁니다. 고난과 능욕을 받는 인생이 행복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기 자신 때문에 고난과 능욕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다가 고난과 능욕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받은 고난과 능욕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을 하다 고난과 능욕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고난과 능욕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 바울이 하나님을 위하여 당한 고난과 능욕은 장차 바울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기 자신 때문에 고난과 능욕을 받는 헛되고 허무한 인생을 살지 맙시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과 능욕도 기꺼이 받으며 삽시다.
지금 고난과 능욕을 받더라도 장차 나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삽시다.
2.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
바울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삶이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이 허무하게 후회하는 인생이 아닐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 유익을 위해 일하며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과 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 2절 중반절에서 언급한 ‘많은 싸움 중에’라는 구절이 바로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말하고 있는 선한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은 바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싸움인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위하여 평생 복음전파의 방해자들과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았기에 후회 없는 인생이요 허무하지 않은 인생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후로 허무한 후회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자기를 기다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허무한 후회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인생 끝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일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음
셋째로 허무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든 다른 어떤 사람에게든지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영광이란 단어는 "δόξαν" (doxa)로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영광'이란 단어는 고대 그리스 예술과 문학에서도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광이란 단어는 시인들과 작가들의 고귀한 사상과 업적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귀족과 통치자들에게도 영광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귀족과 통치자들의 명예, 성과, 업적 등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로 영광이란 단어는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광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사람에게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 자신도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하여 선교 활동한 업적을 생각하면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영광을 받을 만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살이 찢기는 태장을 여러 번 맞아 죽을 뻔한 적이 몇 번이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적이 몇 번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배 타고 가다 파선하여 물고기의 밥이 될 뻔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한 바울은 충분히 사람으로서 영광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았기에 바울의 일생은 허무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허무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며 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시다. 그리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로 살아서 후회하지도 허무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성경 본문을 통해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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